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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악] 오악-서악 화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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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셀프차이나 작성일14-06-17 19:37 조회2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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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톺아오를 수 없는 산봉우리이다. 누가 절벽 위를 걸으며 영원한 역사의 기억을 남겼을까?

안녕하세요.

‘지리•중국’프로 시간입니다.

썽춘입니다.

사회자:

화산은 중국 명산 가운데서의 지위가 아주 독특한데요.

역사적으로 56명의 황제가 화산에서 순유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화산에 오른 황제는 없었습니다.

화산이 너무 가파로웠기 때문에 당나라 이후에야 사람들이 산 위에 길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점차 오늘날 예로부터 화산에 한 갈래 밖에 없는 길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사료 기재에 따르면 이 길은 황실에서 건설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화산에 건설을 했으며 또 천년이나 지속되었을까요?

그들이 화산에 오른 목적은 또 무었이었을까요?

오늘 ‘지리•중국’프로를 함께 보시죠.

화산은 오악 가운데서의 서악으로 산시성 시안에서 동쪽으로 120킬로미터 지점의 화인시 경내에 자리잡고 있다.

화산의 부지면적은 150제곱킬로미터로 옹근 하나 화강암으로 구성되었다.

절벽이 우뚝 솟아 있는데다 사각형으로 깎여졌기 때문에 예로부터 ‘기험천하제일산’이란 미명을 갖고 있다.

일찍 3천년 전, 중국에 이미 오악이 있었는데 화산이 바로 그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하늘 높이 우뚝 솟은 화산이 어떻게 서악으로 될 수 있었을까?

그저 하늘 높이 우뚝 솟고 험준하기 때문이었을까?

중국 역사에서 조대가 교체되고 국토 강역의 변화에 따라 오악이 바뀐 적은 있지만 서악으로서의 화산은 변한 적이 없었다.

예로부터 수많은 제왕이 동악 태산에 올라 봉선 의식을 열고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렸지만 서악 화산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췄다.

이토록 험준하고 가파로우며 톺아오를 수조차 없는 화산이 왜 오악의 하나로 되었을까?

그 뒤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이런 문제의 해답을 찾고 화산과 관련된 더 많은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지리•중국’프로팀에서는 산시성 화인시로 향했다.

전문가의 인솔아래 고찰대는 우선 화산과 5천킬로미터 떨어진 서악묘에 도착했다.

서악묘는 화산 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고대 제왕이 화산을 순유하며 제사대전을 열던 곳이다.

서악묘는 한무제 시기에 건설된 것인데 묘악의 사당 가운데서 건설 연대가 가장 이르고 규모가 가장 크다.

건축 구조가 베이징 고궁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에 산시성 고궁이라는 미명도 갖고 있다

그때 한무제가 토목을 크게 발전시키면서 이토록 방대한 규모의 사당을 짓게 됐는데 그가 서악 화산에 대한 존경과 숭배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오악의 기타 사당과 비교할 때 서악묘가 자리 잡은 위치는 이해하기 어렵다.

기자:

제가 지금 서악묘의 만수각에 서 있습니다.

이곳은 화산과 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요.

오악 가운데의 사당은 모두 산기슭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서악 사당과 산체 간에 왜 이런 구간이 생겼을까요?

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따라 남쪽으로 보세요.

이곳에 서서 화산의 몇 개 주봉을 바라보면 마치 만발한 연꽃이나 고대 관리가 쓴 관모를 방불케 하는 데요.

이 또한 서악 사당을 이곳에 건설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화산은 지세가 아주 험준한데다 톺아오르기도 아주 어려운데요.

그래서 제왕이 서악에서 제사를 지날 때

모두 만수각에 서서 화산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화산의 험준함으로 제왕들은 화산의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지 못했지만 기세가 웅장한 서악묘를 건설했다는 것은 고대 통치자들이 화산을 아주 중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화산이 중국 판도에서의 위치와 이로 생겨난 문화 동질감과 연관이 있다.

뤼런이:

중국 역사에서 화산을 중심으로 주변 300리가 삼황오제의 거주지였습니다.

북쪽으로는 헌원 황제 서쪽으로는 복희와 신농이 있었으며 요의 수도는 핑양(平阳)으로 바로 현재의 린펀(临汾)입니다.

순의 수도는 푸판(蒲坂)으로 바로 현재의 융지(永济)입니다.

우의 수도는 핑이(平邑)로 바로 현재의 빙청(芮城)입니다.

삼황오제가 모두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중화민족의 뿌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중국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것이지요.

오악이 고대 중국의 영토범위를 상징하지만 나라의 국경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오악을 정함에 있어 수도 간의 방위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외 지리적 위치가 어떤 특수한 의미가 있는 지도 보아야 했다.

중국 고대에서 오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4갈래 강이 있었다.

바로 황허 강, 창장 강, 회이허 강, 치수이 강이다

이 4갈래의 강이 직접 바다로 흘러들기 때문에 사독(四渎)이라 불린다.

오악사독은 중국 고대 산천강하의 대표로 사람들 마음 속에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오악사독 가운데서 화산이 황허 강과 가장 가깝다.

개인 날씨에 화산 꼭대기에 올라서면 사독 가운데의 하나인 황허 강을 볼 수 있다. 이로 중국에서 유일하게 악독(岳渎)이 서로 마주하는 풍경을 그려냈다.

뤼런이:

알다싶이 산 가운데서 악이 최고이고 호수 가운데서는 독이 최고입니다.

한개의 악과 한개의 독이 이토록 가깝게 위치한데다 하구가 아주 똑똑하게 보이잖아요.

뤄허 강, 웨이허 강, 황허 강 3갈래의 강이 이곳에서 합류되는 것이 아주 똑똑하게 잘 보입니다.

악과 독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 화산의 큰 특색이기도 하지요.

기타 4개의 악에는 이런 특색이 없거든요.

오랜 세월동안 고대 제왕이 서악 화산으로 올라 정례막배를 했으며 인류도 험준한 산봉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탐색해 왔다.

오늘날 화산하면 누구나 예로부터 화산에는 한 길만 있다는 말을 다 알고 있다.

절벽의 틈새나 몇 미터 되지 않는 산등성에 건설된 길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자극적이어서 등산자의 용기와 의지력을 시험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등산하면서 저도몰래 의구심을 품게 된다. 이 길은 대체 누구 건설한 것일까?

그들은 어떤 힘에 의해 절벽 위에 이토록 간고한 공사를 완성했으며 천년이나 지속했을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하늘 간도가 왜 2천미터 높이의 절벽 위에 건설되었을까?

험준한 이 길의 끝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화산은 기이하고 험준하며 웅장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역사가 유구한 도교 명산이기도 하다.

화산의 궁관도원은 수량이 많은 데다 현재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왔다. 그중 일부 궁관은 국가중점 보호 궁관으로 지정되었다.

화산 중턱에 위치한 칭커핑에서 고찰대는 화산에서 다년간 수련해 온 쓰 도장을 만났다.

예로부터 화산에 한 길만 있다는 유래를 알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은 쓰 도장은 우리를 데리고 현재 수련하고 있는 거처로 가기로 했다.

쓰 도장:

이곳이 바로 예전의 난톈먼입니다.

앞의 저 패방을 ‘총천일문’이라고 하는데 동서남북 4곳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한데 합쳐 총천일문이라고 합니다.

‘톈제’는 도교의 전문 용어로 이곳과 인간 세상의 분계선라는 뜻입니다.

이 톈제를 지나면 바로 하느님의 경계이기 때문에 톈제라고 부릅니다

쓰 도장이 수행하는 곳은 칭커핑 서쪽에 베이더우핑이라는 작은 산 위에 있었다.

쓰 도장은 전에 사람들이 화산에 올라 칭커핑까지 도착한 뒤 더는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저 서쪽의 베이더우핑에서 화산을 바라볼 뿐이었다고 말했다.

쓰 도장:이 옛 길을 베이더우를 향해 화산을 바라본다고 부릅니다.

쓰 도장의 거처에 도착한 고찰대원은 눈앞의 정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쓰 도장이 수행하는 곳이 절벽 위에 뚫인 석동이었기 때문이다.

기자:사람이 도끼로 조금씩 뚫은 것인가요?

쓰 도장:맞습니다.

쓰 도장:인공으로 뚫은 것입니다.

기자:그래요 어려웠겠는데요.

기자:벽에 쇠막대기가 많은데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가요.

쓰 도장:이건 쇠말뚝입니다.

기자:쇠말뚝은 어디에 사용하는건가요?

쓰 도장:이 쇠말뚝 위에 널판자를 가로 올려놓는데요.

쓰 도장:널판자마다 3~5개의 조각상을 올려 놓습니다.

기자:옛 사람들은 전에 이런 동굴에서 수행했나요?

쓰 도장:아닙니다.

쓰 도장:그들이 이런 동굴을 뚫은 것은 마음 속의 하느님 신령을 공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자:단지 신상(神像)을 놓기 위해서인가요?

쓰 도장:그렇습니다.

기자:그럼 그들은 어디서 살았나요?

쓰 도장:동굴 밖에 초가집을 지어놓고 살았습니다.

쓰 도장은 화산에 크고작은 석동이 72개 있는데다 미완성 동굴(半洞)도 있어 화산에 72개 미완성 동굴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완성 동굴이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왜 이를 미완성 동굴이라 불렀을까? 이는 고찰대의 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쓰 도장에 따르면 신비한 미완성 동굴이 화산의 최고봉인 남봉의 절벽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 도착하려면 반드시 아슬아슬한 하늘 간도를 지나가야 하는데 관광 고봉기에도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아주 적다고 한다. 이는 우리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이에 고찰대는 남봉에 올라 하늘 간도의 또 다른 끝인 신비한 미완성 동굴을 찾아 보기로 했다.

기자:

남봉은 화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해발이 2154.9미터에 달합니다.

산봉우리의 동서남쪽은 모두 절벽이고 산꼭대기와 100여 미터 떨어진 남쪽의 절벽 위에는 예로부터 한 갈래의 험준한 길이 있었는데요.

현지인들은 이를 하늘 간도라 부릅니다.

하늘 간도는 화산에서 가장 아슬아슬한 길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까지 와서는 발걸음을 멈췄다고 합니다

대체 얼마나 아슬아슬할까요?

지금 함께 가봅시다.

하늘 간도에 들어간 전 우리는 이곳에서 다년간 수행해 온 신 도장을 만났다.

기자:신 도장 안녕하세요.

신 도장:안녕하세요.

기자:오늘 날씨가 어떤가요?

기자:이 간도를 걷기 적합한가요?

신 도장:괜찮을거에요.

기자:매일마다 이곳을 지키고 있나요?

신 도장:네 그렇습니다

기자:간도를 지나려면 이곳에서 가야 하나요?

신 도장:맞습니다.

신 도장:좋습니다.

기자:그럼 길을 안내해 주실래요?

신 도장:그러죠 지금 함께 갑시다.

신 도장은 화산에서 오래 동안 수행해 온 도장이다,

그의 주요한 업무는 바로 고찰대가 찾고 싶어하는 그 신비로운 미완성 동굴을 지키는 것이다,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하늘 간도를 걷는 관광객들은 반드시 보험 밧줄을 몸에 동여야 했다.

그러나 이런 안전조치를 취한하고 해도 이 험준한 길을 걷으려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

기자:도장님은 안전벨트를 착용할 필요도 없는가 봐요.

도장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어머나, 내려갈게요.

하늘 간도는 남봉의 남쪽 2천여 킬로미터 높이의 절벽에 건설되어 있는데 총 세 구간으로 나뉘었다.

첫 구간은 약 백미터로 난간이 세워져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

두번째 구간은 절벽의 열극 가운데 뚫인 수직된 통로인데 이 길을 걸으니 기자도 바짝 긴장되었다.

기자:여길 보세요.

기자:거의 90도로 된 수직 통로입니다.

기자:꼭 잡아야 겠어요.

도장님 우릴 기다려줘요.

신 도장:천천히 와요.

기자:도장님은 보험 밧줄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나요?

이 길을 지나 우리는 하늘 간도의 세번째 구간에 도착했다. 이곳은 화산에서 가장 험난하고 가장 공포스러운 길이다.

기자:

제 발밑의 널판자 너비는 40~50센터미터 밖에 안 돼요.

그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입니다.

이곳에 올라선다면 절대 아래로 내려다 보지 마세요.

내려다 보면 더욱 무서워지니깐요.

하지만 이때 우리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그토록 가슴을 조이고 무서워하는 간도 위를 신 도장은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아주 평온하게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자:

전하는데 따르면 전에 간도를 건설할 때

이런 쇠사슬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런 보험 밧줄은 더욱 없었겠죠.

그들이 대체 어떻게 지나갔을까요?

제 발밑을 보세요.

하늘 간도는 원나라 때 건설되었다.

몇 백년 전의 옛 사람들이 어떻게 널판자를 2천미터 높이의 절벽 위에 가설했을까?

이 하늘 간도가 정말 신비한 석동으로 통하는 걸까?

옛 사람들이 왜 절벽 위에 석동을 뚫어 수행했을까? 몇 백년 전의 석동이 왜 현재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었을까? 더 많이 수수께끼가 곧 하나씩 풀리게 된다.

50~60미터를 걸어 우리는 간도의 끝에 도착했는데 그곳에 또 수직된 통로가 나타났다.

이 통로를 지나가니 넓고 평탄한 지면이 눈안에 들어왔다. 전설 속의 신비로운 석동이 바로 이곳일까?

기자:신 도장님 이곳이 미완성 동굴인가요?

신 도장:맞습니다.

기자:이 석동이 산 위에 것보다 훨씬 작네요.

신 도장:이것이 마지막 동굴입니다.

신 도장:화산 72개 미완성 동굴에서 이것이 마지막 동굴입니다.

기자:마지막 동굴이요?

신 도장:그렇습니다.

기자:남봉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위에 건설되어 있네요.

신 도장에 따르면 이 동굴은 원나라 전진파 도사 하지진이 뚫은 것인데 그 전에 그는 이미 화산에 몇 십개의 석동을 뚫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조용하고 바깥 세상의 간섭을 받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찾기 위해 결국 화산의 최고봉인 남봉의 절벽 위에 일생에서의 마지막 동굴을 뚫었으며 이곳으로 통하는 하늘 간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석동을 절반 쯤밖에 뚫지 못했는데 그만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미완성 동굴의 유래가 명확해졌다.

그러나 고찰대의 의구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예로부터 화산은 기이하고 험준해 두려움을 자아냈는데 옛 도사들이 왜 간난신고를 겪고 지어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며 절벽 위에 석동을 뚫어 수행했을까?

뤼런이:

도교의 수행은 도법으로 교화해 기로 바꾸고

기를 정기로 승화시키며 정기를 또 정신으로 승화시키는 것인데.요

자신의 정기신과 대자연의 정기신을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중시했어요.

쓰 도장:

도교의 궁극적인 사상은 자연의 순리에 맡기고 마음을 정화하는 것으로 자연과 융합되어야만 마음을 정화하는 목적에 이를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이른바 수행이구요.

캉쩐:

개인으로 볼 때 화산은 수행하기에 아주 훌륭한 곳입니다.

수려한 유혹이나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적어요.

이보다는 위험한 곳에서 바깥 세상과 단절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몸이 천지와 순수한 소통을 할 수 있었던거죠.

화산의 절벽이 가파롭게 우뚝 솟아 가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옛날 도사들의 이상적인 수행장소였다.

오늘날 칭커핑으로부터 남봉 산꼭대기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석동이 분포되어 있다.

그때 도사들이 길 한 구간을 팔 때마다 석동 하나를 뚫었으며 수 백년의 노력을 거쳐

예로부터 화산에 한 갈래 밖는 없는 길’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고찰대는 또 다른 의구심이 생겼다. 중국에 도교 명산이 많지만 화산처럼 석동이 대량 분포된 현상이 극히 드물다.

이는 화산의 독특한 지형지모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천야오화:

이런 특수한 지형으로 산 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땅이 제한되어 있잖아요.

이 길이 형성되기 전에는 다른 산악처럼 재료를 대량으로 운송하여 궁관을 짓지 못했어요.

재료를 운송하기 아주 어려웠고 사용할만한 땅도 아주 적었기 때문에 이같은 절벽을 많이 이용했던거죠.

산 위에 석동을 뚫는 것은 건축재료를 많이 쓸 필요가 없었거든요.

등산 과정에 고찰대는 화산 암체 위에 기둥모양의 절리 즉 수직 열극이 대량 분포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직되고 가파른 절벽에서 우리는 암석이 덩어리 모양으로 붕괴된 흔적을 발견했다.

지질 전문가는 화산은 암장이 지하에서 솟구치며 상승하는 과정에 냉각되어 형성된 화강암이라고 말했다.

이런 암석에 몇 개의 수직 열극이 천연적으로 존재하는데 이런 몇 개의 수직 열극이 있음으로 하여 화산이 심하게 위로 들리고 지표로 노출되는 과정에 중력은 마치 예리한 도끼마냥 암석의 열극을 따라 힘껏 내리 찍었는데 이로 현재 보이는 네모나고 가파로운 화산 지모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암석에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수직 열극은 화산 옛 동굴이 뚫릴 수 있었던 원인이다.

예쑤팡:

화산은 암석의 절리가 아주 완벽한데요

만약 한 덩어리를 파낸다면 완전한 동굴이 됩니다.

절리를 따라서는 파내기는 쉬웠습니다.

화강암은 견고하지만 절리의 열극을 따라 파내기는 쉬웠어요.

암석이 쉽게 파손되지 않았기 때문에 옛 사람들이 동굴을 뚫는 것도 이런 도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당나라 때부터 도사들이 화산으로 가 마음 속의 조용함을 추구했다. 한편으로 길을 수리하면서 한편으로 동굴을 뚫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때문에 막중한 노동를 했으며 심지어 생명을 빼앗기는 대가도 치렀다.

그들은 ‘예로부터 화산에 한 갈래 밖에 없는 길’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절벽 위에 뚫은 석동은 화산에서 가장 진귀한 역사 기억으로 남겨졌다.

수 천만년 전의 지질운동으로 거대한 화강암이 지표 위로 융기되었으며 비와 바람의 침식을 거쳐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자연의 조각사는 서악 화산에 바위가 하늘높이 우뚝 솟은 성대한 기세를 부여했으며 사람들이 절벽 위에 새긴 찬란한 문명으로 기이하고 험준한 이 산은 영원한 매력을 뽑내고 있다.

사회자:

이토록 험준하고 가파로우며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하늘로 통하는 한 갈래의 길이 열려져 있는데요.

견고한 화강암 위에 72개 미완성 동굴이 뚫려져 있습니다.

이는 자연에 대한 인류의 공경함과 두려움을 드러내는 외 사람들이 자신의 의력과 결심으로 사상적인 극락세계를 개척해낸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화산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가장 좋은 체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리•중국’프로를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썽춘입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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