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114
여행견적
회원가입
로그인
모바일버전
CCTV다큐동영상

[오악] 오악-서악 화산(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셀프차이나 작성일14-06-17 19:35 조회279회 댓글0건

본문

이곳은 톺아오를 수 없는 산봉우리이다. 이곳은 하늘의 장인이 빚어낸 진귀한 풍경이다.
이토록 가파롭고 위험한 곳에 어떻게 먼 옛날부터 인간의 자취가 남겨졌을까? 누가 절벽 위를 걸으며 영원한 역사의 기억을 남겼을까?

사회자:

안녕하세요.

‘지리•중국’프로 시간입니다.

썽춘입니다.

지난 프로 시간에 우리는 오악독존의 미명을 갖고 있는 동악 태산의 웅위롭고 기이한 풍경과 오래된 지질 전설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번 프로에서는 서악 화산을 소개하렵니다.

화산이라 하면 가장 익숙한 것이 김용 소설에서 나오는 ‘화산론검’일 것입니다.

사실 김용은 소설을 쓰기 전에 화산에 가본 적이 없지만 화산의 험준한 지모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들었다고 합니다.

아마 무림 가운데서 최고 대결을 펼치는 데 적합한 곳이 화산 밖에 없다고 생각했겠죠.

그렇다면 화산은 대체 얼마나 험준할까요?

화산에는 또 어떤 전기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을까요?

‘지리•중국’프로에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화산은 오악 가운데서의 서악으로 산시성 시안에서 동쪽으로 120킬로미터 지점의 화인시 경내에 위치해 있다.

화산 지모는 ‘험준’하기로 유명한데 예로부터 ‘기험천하 제1산’이라 불리우고 있다.

도끼로 자른 듯한 산봉우리가 하늘 높이 우뚝 솟았으며 마치 김용 필끝의 협객이 쥔 예리한 검마냥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화산을 간단하게 ‘험준’하다는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

화산이 오악 가운데의 하나로 될 수 있었던 것은 더욱 깊은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힘으로 화산에 하늘의 장인이 정성껏 다듬은 듯한 자연경관을 만들어냈을까?

또 어떤 역사로 화산이 오악 가운데서의 지위와 영예를 얻을 수 있었을까?

화산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지리•중국’촬영팀은 지질 전문가가 함께 산시성 화인시로 향했다.

화인은 산시성 웨이난시에 속한 현급 시로 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등산하는 관광객은 반드시 이곳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화산의 부지면적은 150제곱킬로미터이며 견고한 화강암으로 구성되었다.

산기슭에는 유수에 깎겨 형성된 협곡이 아주 많은데 현지인은 산골짜기라 부른다.

‘예로부터 화산은 한 길만 있다’는 화산의 북쪽으로부터 화산위(华山峪)까지의 입구를 가리키는데 주봉인 남봉 꼭대기까지 총 10킬로미터에 달한다. 그중 칭커핑이 중요한 분계선이다.

칭커핑의 해발은 1125미터로 화산 해발의 절반이자 등산 노정의 절반이기도 하다. 칭커핑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산세가 평탄하기에 걷기 쉽지만 칭커펑에서 위로 올라가면 산세가 갑자기 가파로워진다.

이곳에서 화산 주봉의 하나인 서봉까지의 직선거리가 600미터밖에 안되지만 해발은 갑자기 1000미터나 높아진다. 때문에 이 노정은 아슬아슬하고도 자극적이다.

계단이 너무 좁기 때문에 몸을 옆으로 기울이고 철사슬을 꼭 잡아야 합니다.

고찰대는 화산으로 오르는 길이 거의 수직된 절벽에 건설된 것을 발견했다. 아직 톺아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본능적으로 두렵고 긴장된다.

칭커핑으로부터 출발해 약 한시간 걸으니 첫 번째 난관이 고찰대의 앞길을 막았다.

철사슬 한 가닥 밖에 없잖아요.

이 경사는 100분의 13(50도) 이고 300여 개 계단이 있는 데요.

거의 수직으로 되어 있습니다.

관광객:

천천히 올라요.

더 천천히요.

다리 맥이 풀렸어요.

아래로 내려다 보지 말아요.

곧 산꼭대기에 도착합니다.

철사슬을 꼭 잡으세요.

저는 철사슬도 잡지 못하겠어요.

잠깐 휴식합시다.

휴식하면 안 돼요.

다리가 후들거리니깐요.

첸츠촹(千尺幢)은 화산에서 가장 가파른 길이다. 300여 개 계단이 있고 경사는 90도에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은 철사슬을 잡고서야 위로 오를 수 있다.

이 사진에서 보면 첸츠촹은 마치 수직된 절벽에 뚫린 창문을 방불케 하고 그 위를 걷는 사람은 마치 하늘을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첸츠촹을 통해 고찰대는 화산의 가파로움을 처음으로 느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 길의 한쪽 켠에서 고찰대는 또 다른 기이한 길을 발견했다.

기자:

첸츠촹이 화산에 한 갈래 밖에 없는 길에서 가장 톺아오르기 힘든 구간이라고 하는 데요.

사실상 더욱 어려운 구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의를 일으키지 못했는 데요.

여기를 보세요.

사실 이 길이야말로 첸츠촹이 시작되는 길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그때 돌 위에 뚫은 것인데 계단이라기 보다는 겨우 발을 놓는 자리밖에 안됩니다.

옛 사람들이 등산하는 느낌을 체험해 봅시다.

이건 등산이 아니라 절벽 위에서 암벽을 오르는 것이네요.

정말 상상할 수 조차 없어요.

먼 옛날 옛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화산으로 톺아 올랐습니다.

누가 언제 화산에서 이런 등산 길을 뚫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화산에 한 갈래 밖에 없는 길’의 최초의 모습일 것이다.

초라한 모습에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로 숭배의 눈길을 보낸다. 옛 사람들이 화산에 톺아오르기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다.

고찰대는 계속 길을 재촉했다. 고찰대의 목적지는 화산의 주봉인 북봉이다. 북봉은 화산에서 해발이 가장 낮은 산봉우리이자 화산의 기이하고 험준한 경관을 흔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북봉에 올라서니 화산 동서남중 4개의 산봉우리가 똑똑하게 보였다. 이 몇 개 산봉우리와 북봉의 거리가 비교적 멀었는데 멀리서 내다보니 만발한 연꽃을 방불케 했다.

더욱이 산봉우리마다 도끼로 깎은 듯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곧게 세워졌다.

뤼런이 교수(시안건축과학기술대학)

화산의 전반 형태 구조를 보면 여러 봉우리가 모두 하늘 높이 걸려있고 네모나게 깎였습니다.

서봉은 마치 칼로 내리 자른 듯한데요.

높이는 8백 미터나 됩니다.

등산 길에 아슬아슬한 상황이 자주 닥친다. 예로부터 화산은 한 길만 있다고 한다.

고찰대는 또 어떤 공포스러운 체험을 하게 될까?

그러나 고찰대는 화산의 돌이 네모난 두부모양으로 깎져 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눈앞의 불규칙적인 이 큰 돌은 다냐오쓰(大鸟石)라고 불린다.

쉬위닝은 화산 암석에 다양한 광물질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이런 광물질 성분의 경연도와 구조방식이 다름에 따라 차별 풍화현상이 생기는데 이 돌이 바로 차별 풍화의 결과라고 말했다.

고찰대가 이 큰 돌을 가까이서 본 결과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큰 돌 안쪽의 꼭대기 부분에 벌집과 비슷한 크기의 석굴이 분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쉬유닝: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다른 곳보다 바람이 훨씬 셉니다.

그래서 바람이 이곳에서 회오리바람으로 될 수 있는거죠.

회오리바람이 생기면서 알맹이가 내려오게 되고 이곳에서 다듬어지거든요.

알맹이가 크기 때문에 다듬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회전할 수 있는거죠.

또 다른 원인은 이런 열극이 잘 발육된 것입니다.

일부 열극에 고인 물이 이 통로를 따라 흘러내려오면서

겨울에는 얼음으로 되어 버립니다.

얼음이 얼고 녹는 현상이 오랜 세월동안 반복해 작용하면서 결국 이곳에 이같은 골이 생기게 됐습니다.

쉬유닝은 다냐오쓰와 같은 불규칙적인 암석은 화산의 국부적인 소기후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화산의 지모를 보면 가로는 평탄하고 세로는 곧추 세워졌으며 절벽은 가파롭고 하늘 높이 솟아 있어 마치 칼로 자른 듯하다.

이토록 기이하고 특이한 지모는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고찰대는 계속 꼭대기로 올라가 기이하고 가파로운 화산의 정체를 밝히기로 했다.

북봉에서 약 반시간 톺아오르니 또 다른 난관이 고찰대 앞을 가로막았다.

기자:

이런 계단을 올라가려면 다릿심보다는 팔힘에 더 의거해야 합니다.

이 철사슬을 꼭 잡아야 하니깐요.

당연히 용기도 있어야겠죠.

그럼 올라가겠습니다.

이 길은 톈티라 부른다. 길지는 않지만 90도의 절벽에 건설되었다.

기자:

손을 흔드는 것조차 어렵네요.

위로 올려다 보지 못하겠어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어렵겠는데요.

직접 체험하고 난 기자는 팔힘이 많지 않고서는 이 톈티를 톺아오를 수 없다고 말한다.

기자:

샤오장 난 오를 수 없을 것 같아.

고찰대는 촬영과정에 건장하고 힘좋은 젊은 총각만이 이 톈티를 톺아오를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산에 오르려면 용기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건장한 신체가 없다면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첸츠촹과 톈티를 지나서 고찰대는 수직된 절벽 앞에 도착했다.

관광객은 이 돌계단을 지날 때 행여나 사고날까 각별히 조심한다.

바로 이때 눈앞에 모두를 경악케 한 정경이 펼쳐졌다. 이 노인은 화산의 짐꾼이다.

화산의 절벽이 가파롭고 차량이 산 위까지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산 위의 사찰과 여관에 필요한 생활용품은 모두 인력으로 날라야 했다.

오랜 세월의 힘든 노동으로 화산 짐꾼은 낙관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얼마간 더 지나서 고찰대는 화산에서 가장 유명한 험로인 창룽링(苍龙岭)에 도착했다.

이곳은 북봉과 기타 4개 산봉우리를 잇는 유일한 산봉우리이자 화산 꼭대기까지 올라갈 때 반드시 경과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창룽링의 너비는 몇 척 되지 않았으며 양쪽은 모두 천길 낭떠러지였다. 멀리 내다보면 마치 교룡이 숭산의 준령 가운데 자리잡은 듯하다.

기자:

전하는데 따르면 창룽링이 지금보다 오래전에 훨씬 험준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산등성이를 많이 깎은 상황이고 길도 많이 넓어졌는데요.

전에는 산등성이가 이렇게 뾰족했대요.

그리고 위의 길도 아주 좁아 그저 발을 놓을 자리밖에 안됐나네요.

옆에는 이런 난간도 없었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가려면 엎드려서 기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담이 아주 큰 사람이라야 이 험로를 지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하는데 따르면 당나라 대문학가 한유가 이 길에 올랐다가 너무 무서워 울면서 유서를 써서는 산 아래로 던졌는데 이로 한유투서라는 천년 웃음거리로 전해지게 됐다.

사회자:

화산에 올랐던 자라면 화산의 험준함이 기억에 생생할 것입니다.

절벽 위에 뚫린 계단의 경사는 50도 지어 90도를 초과합니다.

이 때문에 등반자는 정신을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데 잠깐만 다른 데 정신을 팔아도 위험한 상황이 닥쳐올 수 있기 때문이죠.

이토록 기이한 등산 체험은 화산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화산의 기이함과 험준함은 오악 가운데서 유일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명산대천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지질운동에 의해 화산이 이토록 독특한 지리 지모를 형성하게 됐을까요?

화산이 형성된 비밀을 밝히기 위해 고찰대는 지질 전문가와 함께 화산 기슭에 위치한 건축물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쉬유닝, 서안지질조산센터 연구원 화산의 지질 변천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쉬 선생은 화산의 기이하고 험준한 지모가 형성된 원인을 알려면 먼저 화산의 유래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쉬유닝

지금 보이는 연속된 이 삼각면이 바로 화산의 산전 활동성 대단열에 의해 형성된 것입니다

이 단열면은 동서향으로 된데다 북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이곳의 해발은 약 410미터이지만 (화산)주봉의 높이는 2154.9미터로 차이가 1700미터입니다.

그러나 양자 간의 직선거리는 5킬로미터 밖에 안됩니다.

이것이 바로 화산이 하늘 높이 우뚝 솟고 상대적으로 가파로운 원인이기도 힙니다.

쉬 선생에 따르면 화산은 2천만년 전에 형성된 단층산으로 상승 속도가 급격했기 때문에 산과 산 아래 평원의 큰 높이차를 야기했던 것이다. 이것은 화산의 지모가 험준한 중요한 원인이다.

이밖에 화산의 부지면적은 150제곱킬로미터인데 옹근 한 개 돌로 이루어졌다. 즉 화산은 돌 하나로 산을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 산천 가운데서 보기 드문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 지질 역사에서도 아주 독특한 것이다.

화산이 ‘돌 하나로 산을 이룬’증거를 찾기 위해 쉬 서생은 고찰대를 이끌고 화산위 서쪽에 위치한 셴위란 협곡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화산에서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협곡이다. 유수는 산을 깊은 V형으로 깎았으며 양켠의 절벽은 더욱 높고 가파로워 보인다.

하지만 고찰대는 아름다운 풍경을 흔상할 겨를도 없이 화산이 돌 하나로 이루어진 증거를 찾는데 급급했다.

쉬유닝

이것은 화산 암석이 형성된 시간 관계를 말해 줍니다.

이것은 약 30억년 전부터 25억년 전에 형성된 한 세트의 변질암석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억 2천만년이었을 때 화산 지역의 암장이 위로 침투되었는데요.

침투된 후 주체가 화강암장으로 되었습니다.

쉬 선생은 일찍 1억 2천만년 전 화산 지역 지각 깊은 곳의 암장이 상승하면서 약 150제곱킬로미터의 거대한 화강 암체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2천만년 전 이 거대한 암석이 강렬한 지질 작용아래 지표 위로 노출되었다.

그리고 맨 위층에 뒤덮힌 오래된 변질암이 자연계 비바람의 침식을 받아 거의 없어져 버렸으며 견고하고 내후성이 강한 화강암만 남겨졌다.

이것이 바로 화산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원인이다.

그러나 화산에 왜 도끼로 자른 듯한 절벽이 형성된 걸까?

쉬유닝

화강암이 형성되고 후기에 융기되면서 산을 조성하는 과정에 3개의 절리(节理)가 형성됐어요.

2개는 수직으로 된 절리이고 하나는 수평으로 된 절리입니다.

빠르게 융기되면서 이 3개의 절리가 칼처럼 두부 모양으로 잘라냈습니다.

르워야나 무즈상 모두 남북으로 한칼 수평으로 한칼 내리 찍어 이런 사각형으로 되었습니다.

지하 암장이 냉각되어 암석으로 되는 과정에 몇 개의 절리를 형성했다.

화산이 상승하는 속도가 아주 빨랐기 때문에 중력은 마치 예리한 도끼마냥 이 몇 개 열극을 따라 힘껏 내리 찍었으며 결국 오늘처럼 네모난 화산 지모를 갖게 되었다.

화산은 험준하기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오악 가운데서의 문화역사 명산으로서의 서악 화산의 정체에는 줄곧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았다.

고증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56명의 황제가 순시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화산을 다녀갔다. 하지만 그 어느 황제도 화산에 오른 적은 없다

이는 화산의 산세가 험준하고 톺아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 제왕이 산을 악으로 정할 때 늘 제사 출행 등 요소를 고려했다. 그러나 산꼭대기까지 오를 수 없는 산을 왜 서악으로 정했을까?

그리고 왜 지금까지 줄곧 바꾸지 않았을까? 이중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걸까?

사회자:

하늘의 장인이 화산의 험준한 산세 지모를 정성껏 다듬었는데요.

그러나 화산에는 알기 어려운 현상이 더 있었습니다.

오악이 고대 중국 강역의 지리적 좌표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요.

이들의 방위는 도성을 중심으로 획분되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있는 이 화면을 보시죠.

화산은 시안의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안은 천년의 황성으로 역사적으로 6개의 조대가 시안을 도성으로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동쪽에 위치한 화산이 서악으로 되었을까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리•중국’프로를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썽춘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북경 (5)자금성 (12)서안 (2)먹거리 (19)티벳 (6)내몽고 (4)아름다운중국 (6)오악 (7)기타 (9)
게시물 검색
항공권, 비자, 여행자보험 신청
(주)포인트투어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 81 파빌리온
카톡 :   위챗 :
전화 : 010-0000-0000
호텔예약 문의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 81 파빌리온
카톡 :   위챗 :
전화 : 010-0000-0000
공항픽업, 렌트카 예약, 여행문의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 81 파빌리온
카톡 :
위챗 :
전화 : 010-0000-0000

금면왕조, 조양서커스, 노사차관, 이원극장, 홍극장, 십찰해극장, 마담투쏘, 고북수진, 북경시내관광, 북경시외관광 전문 여행사!